모든 이별은 힘듭니다. 젊음을 다하여 사랑하던 사람과의 이별이 그렇고, 내게 피와 살을 나눠주셨던 부모님과의 이별도 그렇게 힘듭니다. 그런데 악수 한번, 먼발치에서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사람과의 이별도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오늘 제가 사랑한 KBS FM <김미숙의 가정음악> DJ 김미숙 하차 소식은 가만히 있어도 가슴 한편이 비어버린 듯 서운하고 먹먹합니다.
아버지의 이상형이었고, 나에겐 낮은 오보에 악기 소리같았던 분
사랑하는 아버지가 작년 3월 5일 경칩날 천국에 가셨습니다. 아버지는 엄마를 2년 먼저 보내신 후 깊은 상심으로 실어증과 함께 말문을 닫으셨고 코로나로 방문이 어려웠던 요양병원에서 혼자 쓸쓸히 임종을 맞이하셨습니다. 가끔씩 들른 병실에서 내가 아버지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버지가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을 머리맡에 틀어드리는 것뿐이었습니다. 특히 아버지가 평생 입버릇처럼 나의 이상형이라고 말씀하셨던 'DJ 김미숙님'의 방송을 즐겨 들으셨습니다. 제가 음대에서 작곡을 전공해서 그런지 우리 가족 모두는 가요보다는 클래식 애호가들입니다. 아버지는 본인이 좋아하시는 배우이자 DJ인 김미숙 님의 '세상의 모든 음악'과 '김미숙의 가정음악' 청취자이셨고 나도 덩달아 김미숙 님 모든 방송의 애청자가 되었습니다. 김미숙 님의 차분하고 따뜻한 음성을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하루의 피로가 풀리고 마음에 위로가 된다고 하셨었죠. 편안한 표정으로 말없이 김미숙 님의 멘트와 선곡을 들으시며 편안해하셨던 모습이 선명합니다. 맞습니다. 오래전 '세상에 모든 음악'을 들으며 하루 동안의 기쁨, 슬픔, 아픔까지 풀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몇년전부터는 '김미숙의 가정음악'으로 차분하고 정돈된 하루를 시작했었지요.
당신이 떠난 자리를 음악이 채우겠지만
DJ 김미숙 하차 소리에 오래 전 이 분과의 한차례 이별이 생각났습니다. 대학시절부터 들어왔던 '세상의 모든 음악'을 어느 날 하차하고 여러 DJ이가 그 자리를 채웠었죠. 어떤 이유에서인지 김미숙 님의 마지막 방송을 듣지 못했는데요. 익숙하지 않은 DJ의 음성에 '휴가 가셨나' 아니면 '촬영으로 잠시 자리를 비웠나' ' 어디 아프신가?' 많은 생각이 지나치곤 했었습니다. 나중에 김미숙 님이 하차하고 새로운 DJ 진행을 하게 된 것을 알았을 때는 이별 없이 떠난 애인처럼 서운하기까지 했습니다. 준비 없이 이별이 다가왔기에 그녀가 떠난 자리를 다른 사람으로 채우지도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그때는 언젠가 다시 라디오에서 음성을 들을 수 있으리란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하차 소식은 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본인도 '언제 또 이렇게 오랜시간 방송을 진행할 수 있을지 장담 못하겠다'는 스치는 멘트에서 얼마나 슬픔이 복받쳐 오르던지요. 음악은 지나간 청춘을 조각조각 기억으로 자리하게 합니다. 음악은 잊고 살았던 지난 인연을 불현듯 떠오르게 하고 사랑하는 부모님과 함께 했던 어린 시절, 입학과 졸업, 생일축하파티, 산책, 드라이브 순간을 떠오르게 합니다. 특히나 김미숙님의 흡사 바꿀 수 없는 '악기소리'같은 멘트들에 혼자 감동하고 벅차오르고 행복했었습니다. 오늘 방송을 끝으로 김미숙 님을 떠나보내려니 아버지의 기억과도 이별하는 것 같아 힘듭니다. 아버지와 이별, 김미숙 님의 부재도 아직 준비가 안되었으니까요. 당신이 떠난 자리는 제가 사랑하는 음악이 채우겠지요. 하지만 김미숙 님이 음악을 감동스럽게 하고 기억으로 간직되게 해 줬던 오보에 같은 음색과 높낮이, 숨결까지 모두 기억할 겁니다. 한동안 주인이 떠난 자리를 음악이 쓸쓸히 지킬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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